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S19 무스타-S (문단 편집) == 개발 == [[포병]]을 전쟁터의 신으로 불렀던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 이래로 [[소련군]]은 [[화력덕후|야포와 자주포에 집착했다.]] 그러나 화포를 보유한 숫자만 서방에 비해서 우세했지 정작 명중률이나 유효사거리같이 전술적으로 중요한 성능은 늘 서방측에 한 수 밀렸다. 1971년부터 도입한 [[2S3 아카치야]]같은 자주포도 자동화로 인한 운용인원 절감을 추구해서 서방측보다 진보된 장전보조장치를 쓰는 점은 좋았고, 주무장으로 [[152mm]] 곡사포를 사용하여 [[155mm]] 곡사포를 사용한 서방의 [[M109]]와 거의 동등한 성능을 냈다. 하지만 당대 많은 서방 자주포에 비해서 짧은 사정거리, 형편없는 발사속도, 구식 사통장치를 보유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중요한 전술적인 부분에선 뒤쳐졌다. 일단 소련 곡사포의 최대 사정거리는 서방을 능가했으나 명중을 기대할 수 있는 유효 사정거리는 휠씬 짧다고 악명 높았다. 게다가 당시 서방에서는 [[SP-70]]같은 신형 자주포를 개발하며 자주포의 유효사거리 증대를 위해 노력하던 시기라 소련에서도 서구권 자주포들의 성능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러한 과거를 타파하고 서방 수준의 성능을 추구한 자주포가 무스타-S이다. 무스타의 유래는 러시아 북서부의 강 이름이다. 1976년부터 [[우랄트란스마쉬]]에서 '페르마'라는 코드명을 부여받은후 개발에 들어갔고, 새로운 자주포는 오비옉트 316으로 코드가 부여되었다. 동시기에 동일한 무장을 장착하면서 무게를 줄이기 위해 오픈탑으로 설계된 오비옉트 327도 개발되었지만, 오비옉트 327은 결함을 바로잡고 개선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겨져서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취소되었다. 이후 개발은 오비옉트 316에 집중되어 1980년부터 공식적으로 무스타-S(GRAU 코드 2S19)라는 명칭으로 오비옉트 316의 실질적인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2S3 아카치야]]를 대체하는게 목표였다. 2S19 자주포가 개발되던 동시기에는 무스타-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52mm 2A65 무스타-B|2A65 견인곡사포]]도 설계되고 있었으며, 자주포용으로 2A65를 개량한 2A64도 설계되었다. 1983년에는 [[T-72]]의 차체를 기반으로 만든 시제품이 등장했지만, 테스트에서 T-72 차체의 현가장치가 반동을 잘 견디지 못하는 문제가 발견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구동계는 T-72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되, [[T-80]]의 서스펜션과 차체 부품들을 활용하여 차체를 재설계하였다. 1986년부터 테스트를 위해 시제차 6대가 제작되었고, 테스트를 마친 뒤 1989년에 제식 채용되었다. 하지만 1989년은 소련이 내외적으로 어렵던 시기라서 그리 주목받지 못한 비운의 자주포이기도 하다. 소련 해체 후 러시아는 경제 재건과 수출을 위해 기술이전에도 적극적이었기에 무스타-S도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차]]와는 달리 자주포는 개발능력이 되는 많은 나라들에서 독자 개발에 열을 올렸고, 개발 능력이 부족한 나라들은 소련제 중고 자주포라도 계속 사용했기 때문에 무스타-S는 거의 팔리지 못했다.[* 적 전차와 직접 사격으로 포탄을 주고받으며 싸워야 하기에 성능 하나하나가 중요한 전차와 달리 자주포는 적과 직접 부딪치는 일 없이 후방에서 포만 잘 쏘다가 도망가면 되는 존재였기에 이렇다. 전차에 비해 개발 난이도가 낮을 수 밖에 없는것.] 구 소련 출신 국가를 제외하면 [[베네수엘라]]가 유일한 수입국이었다. 그러나 수출을 거의 못했다고 해서 성능은 무시할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